마스터티쳐는 학생들이 첫 째, 가슴을 모으고, 둘 째, 배와 등을 위로 올리고, 셋 째, 발의 기본 자세를 엄격하게 지키도록 하고, 넷 째, 무릎을 펴며 턴아웃을 유지하도록 주의를 준다.
이미 발레에 익숙하거나 무용수로서의 자격을 어느 정도 갖춘 학생들과 레슨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John White교수는 단순히 클래스를 이끄는 선생님을 lesson-givers 라고 표현하고 있다. lesson-givers와 teacher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구문이다.
타고난 재능을 가진 학생들은 좀 모자란 선생에게 배우더라도 어느정도 숙달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학생들을 배출한 것은 자신이 가르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선생이 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반면에 학생을 내면적으로나 신체적인 한계를 예술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하려면 매우 남다른 가르치는 재능이 필요하다.
학생의 수준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마스터티처만이 대개 가능한 능력이다. 위대한 스승은 아첨이나 생색내지 않는다. 이미 학생들이 그들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John White는 발레를 배울 때 학생들이 예술의 내면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White의 이러한 지적은 발레교육의 내면적 성찰을 강조하는 것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에 외관을 보고 판단하는 경향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발레를 배우는 보통 학생들은 여러 학원을 거치면서 여러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이 발레 교육의 다양한 면을 섭렵하기 보다는 발레 교육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학생들이 선생의 실력을 비교판단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와 같이 한국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옮겨 다니며 발레를 배워야 할 경우 학생은 혼란에 빠지기 쉽다. 선생마다 다른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이러한 다른 면모는 선생을 평가하는 단초가 된다. White가 지적한 것 처럼 이것은 대체로 경우에 어긋날 뿐 아니라 특히 학생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 단독으로 선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두 시간 수업을 받아보고 선생을 평가한다면 그러한 평가는 선생의 지도하에서만 가능하다. 한편, 현재 선생이 아닌 예전 선생으로 받은 교육은 학생의 성장과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한두번 만난 사람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더우기 배우려는 학생이 선생을 한 두번 보고 평가한다는 것은 경우에도 맞지 않고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교육장소인 학원에 시장의 원리가 적용되는 우려스런 상황은 종종 발생한다. 대체로 흔히 말하는 진정한 스승의 자세를 견지하며 노력하는 선생은 존경받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시장과 성격이 다른 교육의 특권에 해당한다.
이미 훈련된 학생에게 레슨하는 것은 뛰어난 실력을 가지지 않는 선생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초보자나 중급자의 잠재력을 최대로 성장시킬 수 있는 수업을 개발하려면 상당한 능력과 지식 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한 학생은 반복 연습이 중요하다. 이미 기본을 알기 때문에 반복 훈련을 통한 체화만이 남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기는 소가 되새김질로 음식을 소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볼 수 있다. 반면 초급자나 중급자의 경우 선생은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동원하여 발전교육안을 개발하여야 한다.
수업진행자 lesson-givers의 개념이 흥미롭다. 여기에 대해 White는 Classes taught by lesson-givers are usually devoid of planning, which is evidenced by a lack of attention to detail and logical progression. Sometimes their combination are uncomfortable to perform and don't make visual or dynamic sense, while at other times their improvisations may be spirited and fun. 계획이 결여된 수업진행, 불편한 동작의 연결, 그럼에도 때로 재밌거나 열정적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In any case, students who desire to develop their full potential should avoid lesson-givers and search out master-teachers.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발전하려고 하는 학생은 lesson-givers로 부터 수업을 받아서는 안되며 master-teachers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Otherwise, they may be compromising their futures and their chances for achieving the high goals they have set for themselves. 반면에 학생들은 그들자신이 설계한 목표를 성취하는 방편으로 미래와 기회 등과 타협할 수도 있다.
반면에 학생들은 그들자신이 설계한 목표를 성취하는 방편으로 미래와 기회 등과 타협할 수도 있다
high goals라는 부분의 해석이 어렵다. compromising their futures and their chances부분에서 미래나 기회가 타협의 대상이라는 건데, compromise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상 바람직하지 않은 타협, 해서는 안되는데 하는 경우. 이것이 for achieving the high goals이고 이 goals는 they have set for themselves, 즉 학생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높은 목표라는 거고 이러한 학생들의 기준에 입각한 목표라는 것 차제가 부정적인 한게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타협은 교육보다는 정치에 적합한 용어라고 보여진다.